오스카 메리칸토의
The Most Beautiful Songs



회색 빛 겨울날 조용하고 빛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쓸쓸한 찬 기운만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필자는 새벽을 좋아한다. 늦가을이나 겨울날의 새벽은 특히 좋아한다. 겨울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몹시 추위를 탄다.
그래도 뼈 속까지와 닿는 새벽 공기에 필자의 몸을 맡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이처럼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른 새벽 필자는 혼자 사색을 즐긴다. 아마 필자가 필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10여 년 전 필자는 핀란드에서 열신 '쿠모 실내악 페스티벌' 에 초청받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필자가 유난히 좋아하는 호수와 잣나무가 많았던 그곳은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쿠모 실내악 페스티벌'은 아주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유럽 전역에 찾아온다.
유명한 연주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곳 사람들에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실내악 페스티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연주회들도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열리는데 볼거리 많은 장터에 온 것처럼 모두들 마음 설레이며 연주를 들으러 온다. 그곳에 참 아담한 교회의 열린 음악회에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반주에 맞춰 혼신을 다해 노해 부르던 핀란드 출신의 바리톤 가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핀란드의 낭만주의 작곡가인 오스카 메리칸토의 곡을 불렀는데 그 곡이 어쩌나 아름답던지...,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던 곡은 없었던 것 같다.슈트아우스의 「마지막 4개의 노래」도 무척 좋아하는데 그보다 더 좋았으니까.
페스티벌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헬싱키에 도착해서 메리칸토의 곡이 담긴 CD를 찾으러 레코드 가게를 수소문했다.
너무나 귀한 곡이어서 그런지 몇 군데를 돌아다녀서야 겨우 CD 1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 CD는 오스카 메리칸토의 「The Most Beautiful Songs.」 .
이름 그대로 정말 아름다운 곡들이다.
모두 3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The Wood-Doves」와 「Annina」가 특히 더 했다.듣고 있으면 영혼을 노래하는 듯한 신비스러움에 싸이게 되는데,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한 겨울날과 너무 잘 어울린다.
머지 않아 우리는 새 천년을 맞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도만 바뀔 뿐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긴장하며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바흐의 곡이 없어지겠는가? 브람스의 곡이 달라지겠는가? 이처럼 유행과 무관한 음악을 접하며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 내년 이맘 때가 되도 이 곡을 사랑하며 들으리라.
/ 음악춘추 199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