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의 기를 활 끝에 모아

비올리스트 오순화의 독주회가 11월 26일 영산아트홀에서 있었다.
음악이 청중과 함께 호흡하며 문화의 중심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연주 무대를 필요로 한다. 특히 중견 연주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레퍼토리 계발은 필수적인 것으로, 언제나 객석을 압도하는 열정이 표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순화의 무대는 강한 설득력으로 다가오며 전문 연주가로서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그의 노력은 국내 연주계에 신선한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다. 특히 이번 연주회는 특수 조명을 통해 무대의 색감을 음악과 어울리게 함으로써 청각과 시각의 조화가 주는 특별한 경험을 청중에게 선사했고 그러한 시도는 청중의 시선을 무대에 집중시킴으로써 진한 음악의 세계를 맛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같은 한국 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대진이 피아노를 맡았고 프로그램 중 세 번째 무대에서는 기타리스트 장승호와 함께 앙상블을 이룸으로써 다양한 음악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비가로 시작된 연주회는 처음부터 깊은 감정의 여운이 메아리 쳤는데 무게가 느껴진 유려한 보잉은 호소력 있는 소리를 만들어 내어 첼로로 듣던 비가와는 또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특히 오순화의 효과적인 감정 처리와 상호 대비가 확연한 다이내믹은 비올라만이 가지고 있는 단아하고도 우아한 맛을 맛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두 번째, 러시아 작곡가 글린카의 소나타 d단조는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의 두 개 악장이지만 슬라브적 두터움과 하려한 기교의 처리가 중요한데 오순화의 강한 음색이 유려한 기능과 잘어우러져 슬라브 음악의 매력을 경험케 했다. 기타리스트 장승호와 앙상블을 이룬 팔라의 스페인 민속 모음곡은 바이올린으로 많이 연주되는 곡이지만 오순화의 비올라의 기타의 만남은 다소곳한 실내악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두 악기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스페인 민속음악의 내적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오순화의 연주는 온몸의 기를 활끝으로 모아 다양한 감정의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비올라로부터 끌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청중에게 보여주려는 그의 노력이 강한 반응을 얻고 있었다.
마지막은 다시 김대진의 피아노와 함께 브람스의 소나타 1번 Op.120을 무대에 올렸다. 클라리넷으로도 연주되는 소나타 1번에서 비올라의 음색은 깊이를 더했고 소리의 공명을 높여 풍료한 울림을 만들어 주었다. 비올라 연주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 풍요한 울림인데 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오순화는 브람스에서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2악장 안단테의 폭넓은 울림, 그리고 4악장 비바체의 빠른 패시지에서도 소리의 여유가 느껴진 것은 오순화가 연륜과 더불어 새로운 예술세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 Strad 200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