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가을, 비올라 그리고 낭만적인...

그는 항상 이맘 때쯤 독주회를 가져왔다. 2년마다 때가 되면 꾸준히 무대에 오른 것인데 그게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그가 가을을 타기 때문에 연주회를 준비하곤 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남들은 봄에 설레하는데 전 유난히 가을을 타요. 그래서 연주회를 항상 가을에 맞춰 준비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분위기나 내 표현이 더 잘 나올 수 을 것 같아서죠.”
음악계에서 유난히 시원한 성격과 화통한 말솜씨로 정평이 나있는 그가 가을을 탄다니 무척 잘 어울려 보인 것이 사실이다. 비올라,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가을, 모두 하나의 코드로 통하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낭만적인…. 이번 독주회나 새롭게 출시될 그의 첫 번째 독주 앨범 모두 이 한 코드로 묶여있다.
“일부러 독주회의 제목을 달거나 낭만적인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2월에 녹음을 마친 CD가 이번 독주회에 맞춰 출시되는데 음반 안에 있는 곡 중에 하나를 음악회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죠. 바로 글린카의 소나타인데 굉장히 로맨틱한 곡입니다.”
이번 독주회는 더욱 더 가을과 어울리는 성격을 띠고 있다. CD의 타이틀이 ‘꿈을 꾸고 난 후(After a Dream)’인데 음반 재킷에는 비올라를 품에 안고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져 있다.
“2월에 불가리아에서 녹음했습니다. 준비는 녹음하기 6개월 전부터 했는데 첫 독주 음반이라서 그런지 설레기도 하고 또한 이 음반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로 나가는 레이블이라서 기대도 됩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
딸만 다섯인 딸부잣집의 맏이로 태어난 비올리스트 오순화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달리 좀 특이하다. 직장을 가진 엄마를 둔 탓에 바이올린을 배우던 셋째 동생의 레슨에 따라다니게 되었다 동생의 레슨을 지켜보면서 바이올린 소리에 매료되었고 급기야 집에 돌아와서는 동생 악기를 뺏어들고 바이올린을 연습해 보곤 했다. 그러다 몇 달 후 동생의 악기는 그의 것이 되어버리게 된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으니까 좀 늦은 출발이었죠. 그러나 제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고 당시 내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무엇도 강요하시지는 않았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하게 해주셨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의 강요나 주위의 권유에 의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음악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남들보다 이른 유학(고등학교 1학년)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남윤 선생님의 권유로 유학을 떠났고 선생님이 다리 역할을 해주신 마가렛 퍼디 선생님 댁에 머물면서 저의 유학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기초와 테크닉을 튼튼하게 가르쳐 주시던 퍼디 선생님은 어머니 같이 자상하기도 해서 제가 안정적으로 유학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비올라로의 전공 바꾸기 또한 퍼디 선생으로부터 기인한다. 바이올린, 비올라의 더블 메이저였던 퍼디 선생에게 레슨 받으러 온 학생들의 비올라 음색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고 방학 때마다 참석했던 메도우마운트 음악캠프에서 실내악 연주 때 비올라를 하게 된 것도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비올라를 전공하게 된 것은 비올라를 위한 콩쿠르인 그레이트 넥 콩쿠르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부터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줄리아드 음대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오디션이나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비올리스트로서의 인생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 경우는 그렇지 못했지만 항상 비올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올라로 바꾸고 나서 바이올린에 대한 미련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은 오케스트라 악기니 실내악용 악기니 얘기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비올라가 좋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지요.”
그는 9년의 유학 생활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나갔다. 교수의 집에서 기거했으니 딴 맘먹기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10년 가까이 뉴욕에 살면서 보스턴이나 LA에 가보지 못했을 정도로 고지식하게 공부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 속에 유일한 취미는 영화감상이 다였다. 유학을 떠나고 나서 3년 동안 한국에 오지 않은 것도 그 고지식하고 책임지려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유학 생활의 재미있는 기억이라고는 잘 생각나질 않아요. 하지만 그때 그렇게 공부했던 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폴 독터 교수에게 가게 된 것도 제가 원해서 정한 일이었죠.”
천상 선생인 마가렛 퍼디에게 구체적이고 꼼꼼한 기술적인 면을 배웠다면 세계적 연주자로 활동하던 독터 교수에게 그는 연주자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 태도와 스케일을 전수받았다.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서슴없이 독터 교수를 꼽는다

그의 비올라 사랑, 올라 비올라
오순화의 비올라 사랑은 음악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비올라를 조기에 시작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지난해 경복초등학교 오케스트라에 비올라 두 대를 기증했다. 음악, 특히 현악기를 시작하려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일찍 비올라를 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중음의 비올라는 현악기를 시작하려는 어린아이들에게 참 적합한 악기입니다. 일반적으로 바이올린이 대중적이어서 바이올린으로 현악기를 시작하는데 비올라를 전공할 생각이 있다면 처음부터 비올라로 시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비올라는 인성과 비슷한 중음역대의 악기라 일단 시작 단계에서 거부감이 없고 처음부터 가온음자리표를 익히며 공부해 가면 그만큼 진도를 빨리 나갈 수 있죠. 일부에서는 바이올린을 전공하다 잘못하면 바꾸는 대체악기로 비올라를 생각하는데 전공을 바꾸더라도 바이올린을 잘 하던 학생들이 비올라도 잘 합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올라 비올라]란 제목의 비올라 전문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기도 하며 같은 이름의 앙상블을 창단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지난해 12월에 창단 연주회를 가진 이래 이미 여러 차례 연주회를 가진 그들은 내년에 벌써 유럽 순회 연주 계획이 잡혀 있기도 하다.
“예전에 파리에 갔을 때 비올라 신문을 보고 참 좋다는 생각은 했었지요. 그런데 잡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 들은 라디오의 퀴즈 때문이었죠. 정답은 비올라인데 젊은 사람들도 못 맞추는 것이에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여덟 페이지 정도 되는 간단한 정보지 형태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넣다보니 잡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다소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6집까지 발간되면서 비올라 음악의 대중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조심스런 평가를 받고 있다. 4000부를 발행해 회원들에게 배포되고 난 후 병원이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반 오케스트라 등 여러 장소에 비치해 놓기 때문에 3개월간 질릴 때까지 만날 수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정말 비올라를 사랑하는 골수분자들이 꽤 많더라’며 그들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또 한가지 기존의 각 콩쿠르에 비올라 부문을 개설하는 데 열심이기도 하다. 이제는 계절마다 비올라를 위한 콩쿠르가 열리고 있는 것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보이는 그대로 평가받기를
그가 연주회에 거는 기대는 그렇다. 꾸준한 연주자로서의 오순화가, 그래도 연주회 때마다 한가지씩 새로운 레퍼토리를 청중들에게 선보이고자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으면 만족이다.
“연주회란 악기를 통한 나의 표현이지요. 무대 위에서는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솔직한 표현을 음악에 실어서 청중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저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를 마음으로 받아주었으면 합니다.”
타베아 짐머만이나 킴 카쉬카시안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그들의 연주에서는 작곡가마다의 곡의 개성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누가’ 연주하느냐보다 ‘무엇’을 연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코리안 솔로이스츠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의 중요한 앙상블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그는 앞으로도 현악 사중주나 트리오 등 활발한 실내악 활동도 계획 중에 있다.
앞으로도 비올라를 알리기 위한 일과 한국 비올라 음악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장 낮은 곳에서 그러나 앞장서서 뛸 마음이 그에게는 있어 보였다. 비올리스트 오순화는 그래서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여러가지 여건상 열정적으로 뛰어 들어서 열심히 책임지며 하겠다는 마음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는 11월 26일 영산아트홀에서 펼쳐질 그의 무대에서 이 가을의 낭만적 향기를 흠뻑 맛보고 싶다. ■글·남효정 / 사진·윤윤수

/ Strad 200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