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오순화
비올라 선율에 실은 서정. 와인 빛 뮤즈
오는 11월 26일 오후 7시 30분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독주회를 갖는 중견 비올리스트
오순화 교수를 만나러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인터뷰를 간 날, 처음 교수실을 들어서면서 들려오던 비올라 선율은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와인색 투피스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그녀에게서 전해들은
비올라 사랑 이야기.
가을에 울리는 비올라의 멜랑콜리한 긴 흐느낌은 좀처럼 감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왠지 모를 사색과 우수의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그리고 애수에 찬 선율은 어느 계절보다도 더욱 짙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 아름다운
서정을 전달한다. "바이올린처럼 날카롭고 화려한 고음도, 첼로처럼 중후한 저음도 아니지만 비올라는 깊고 감성적인 음색을
갖고 있죠. 정말 인간의 가슴에 파고드는 편안한 소리를 창조하는 그런 악기에요."
비올리스트 오순화의 악기 사랑은 이처럼 남다르다. 그녀는 그동안 바이올린과 첼로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비올라의 특성상, 연주자가 부각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식견 있는 음악애호가들로부터 뛰어난 비올라 독주자로 주목을
받아온 비올리스트다.
"현악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이 가운데 비올라의 위치란 늘 관심밖에 놓은 2류악기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죠"
오순화 교수는 이 점이 가장 안타깝다며 인터뷰의 말문을 열었다. 그녀가 이번 독주회에서 연주할 레퍼토리는 포레의 엘레지를
비롯해 글린카와 폴라, 그리고 브람스의 소나타 곡들이다. 비올라라는 악기 소리의 매력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곡들로
선곡되었다고 한다.
"가을에 하는 공연이라 로맨틱하고 사랑스런 곡들, 사람들에게 친근한 곡들을 중심으로 준비해 봤어요. CD음반도 함께 낼
예정이고요. 어째든 전 무엇보다 이번 연주를 통해 비올라라는 악기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그 소리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녀는 현재 비올라 전문 계간지 [올라 비올라]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이라는 의미로, 비올라를
마치 다정한 친구처럼 여겨달라는 뜻으로 지어졌단다. 비올라 공연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아직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올라라는 악기의 올바른 이해와 홍보를 위해 만들어져 배포하는 잡지인 만큼 [올라 비올라]에는 비올라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연주가의 근황, 최근 공연소식 등이 가득 담겨져 있다.
"책을 만들고 계속 내는데 사실은 어려움도 많아요. 하지만 비올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 책임감도 크고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계속 꾸준히 비올라에 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싶은데 올라 비올라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그녀는 '올라 비올라 사운드'를 창단, 지난 12월 성황리에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창단 연주회에서 1부는 비올라 영역을
확장하는 레퍼토리로, 2부는 대중적이면서도 감미로운 곡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세~29세의 젊은
비올리스트로 구성된 이 앙상블은 줄리어드에서 석사를 마친 김성은이 악장을, 코리안 심포니 비올라 수석인 강창우가 지휘를
맡았다. 내년 1월에는 유럽에서의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도미하여 마운트 섬머스쿨과 줄리어드 예비학교, 줄리어드 음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오순화는
마가렛 파디와 풀 독터 교수에게 사사했으며 장학생으로 졸업했고, 독일 뮌헨 R. 쉬트라우스 콘서바토리움에서 M.A.로데교수의
연구 조교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이미 유학시절 AMTL 콩쿨을 비롯해 그레이트 넥 영아티스트 콩쿨, 줄리아드 바하콩쿨을
석권하는 등 그동안 뛰어난 음악적 기량을 인정받아 왔다.
현재 실내악 그룹 '솔로이스츠' 멤버로 활약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인 오순화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각자의 개성을 살려주고 같은 곡이라도 다르게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도록 지도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경우가 더 많아요. 음악적으로 소질있고 재능 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처음에는 그저
테크닉적으로만 훈련되어 있는 학생들이 가르침을 통해 점점 자기 음악세계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 더 큰 보람을 느끼지요.
특히 저는 음악 뿐 아니라 영화나 연극, 미술 같은 다양한 문화적 감성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이 권하곤 해요. 결국 음악도
감정의 전달, 연주자와 청중의 호흡 같은 거니까요. 방식은 달라도 문화는 각자의 언어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지식이나 간접적인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1978년 줄리아드 Paul Hall에서의 비올라 독주회를 시작으로 링컨센터, 카네기 리사이틀홀에서의 조인트 리사이틀, 줄리어드
심포니 협연, 일본 오사카, 교토, 독일 그라페르필 연주회 등. 그녀는 그동안 수많은 연주를 통해 우리에게 비올라의 깊고
서정적인 소리의 매력을 전달해 왔다. 또한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바로크, 부산시향, 줄리어드 심포니, 상해교향악단
등 국내외 오케스트라와 여러 차례 협연을 갖기도 했다.
"독주회, 앙상블, 오케스트라 협연, 모두 제게는 나름대로 큰 매력이 있어요. 특히 독주회는 제 자신 스스로의 음악적 역량을
개발하고, 나타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진솔한 자신의 모습이 구현되는 것 같다는 오순화 교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성들을 비올라라는
악기를 통해 전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큰 축복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주회가 끝나고 뜨거운 객석의 환호와 갈채가 점점 사라지고 모두들 돌아가 적막한 무대 위의 공허감이 느껴지면 갑자기
허탈감이 들 때가 있어요. 연주를 통해 제 내면의 모든 열정을 쏟아서 그런가 봐요. 그래도 무대의 어둠을 뚫고 반짝이는
청중의 눈빛들이 보일 때, 그 순간이 참 좋습니다."
열정이라... 아마도 그녀가 말하는 열정이란 음악가가 체험하는 여러 감정 중 가장 정제된, 예리하고 불길 같은 감성을
의미할 것이다. 비올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함없는 솔직한 음악세계를 지켜가고 싶다는 그녀의 풀잎처럼 부드러운 눈빛
너머로 정상을 지키는 비올리스트로서의 자부심과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인생을 통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향해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면에서 여름내 화려했던 푸르름이 쓸쓸히 조락 속으로 사라지는 가을 밤. 비올리스트 오순화가 전하는 애수와 서정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영원한 음악의 여신 뮤즈의 은총일지 모른다.
/ MUSE 200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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